PEOPLE 2014│① 양현석, 올해의 문제적 인물
[아이즈 ize 글 황효진] “2014년은 YG에게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YG의 향후 10년을 결정짓는 큰 도박과도 같은 해다.” 올해 초 YG 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양현석 회장(이하 양현석)이 공식블로그 ‘YG LIFE’에 쓴 글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2NE1, 태양, 에픽하이,WINNER, 악동뮤지션, 하이수현 등 YG 뮤지션들의 노래는 1년 내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있었다. YG의 올해 매출이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뛰어넘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한 팀의 앨범 제작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일정조차 자주 미뤄지는 탓에 ‘악마의 연기’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YG는 올해 쉴 새 없이 새로운 음원을 발표했고, 음악적 색깔도 제각각이었으며, 모두 성공을 거뒀다. 무엇보다 악동뮤지션, WINNER, 곧 데뷔할 iKON까지 신인 뮤지션들을 대거 선보인 결과다. 양현석의 도박은, 높은 수익으로 돌아왔다.
도박의 판돈은 무한 경쟁의 서바이벌 쇼였다. 양현석은 마치 갬블러처럼 리스크가 큰 서바이벌 쇼로 소속 가수들을 밀어 넣었다. WINNER는Mnet < WIN >에서 승리한 A팀이었고, 당시 B팀 소속이었던 B.I와 바비는 패배 후 <쇼 미 더 머니 3>라는 기존 래퍼들과의 거친 경쟁에 던져져야 했으며, 다시 아이콘의 최종 멤버들을 서바이벌로 확정하는 <믹스 앤 매치>에 참여해야 했다. 반대로 이하이와 악동뮤지션은 서바이벌 오디션SBS <일요일이 좋다> ‘K팝스타’의 참가자였다. “내가 서바이벌을 너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략) 하지만 깊은 상처가 이 친구들에게 훨씬 더 강한 굳은살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간 그러한 과정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믹스 앤 매치> 제작발표회)라는 양현석의 말은 그의 경영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살아남아라. 그러면 스타가 될 수 있다.
양현석이 경쟁의 판을 직접 설계한 < WIN >과 <믹스 앤 매치>는 그 방식에 대한 더욱 명확한 예다. 그는 ‘월말평가’ 등의 경쟁으로 승자를 선발하고, 패자에겐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며, 승자에겐 데뷔는 물론 강력한 프로모션으로 음원 차트 1위라는 확실한 보상을 준다. 그사이 ‘양군’ 혹은 ‘양싸’로 불리던 양현석 회장의 친근한 이미지는 사라졌다. 무대에서 패기 있게 랩을 쏟아내는 바비와 B.I도 < WIN >과 <믹스 앤 매치>에서 양현석 회장의 평가를 들을 때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바비와 B.I가 경쟁의 승자라면, 양현석 회장은 경쟁 그 자체를 만들어낸 조물주 같은 존재가 됐다. 그만큼 경쟁을 유도하는 그의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은 찬반 논란과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서바이벌 과정에서 WINNER와 iKON의 팬덤은 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양현석은 비정한 제작자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게다가 박봄의 암페타민 반입 건 당시 양현석이 블로그에 직접 올린 해명 글은 그를 향한 비난을 더욱 크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서 소탈한 사생활을 공개했지만, 그가 판을 움직이는 ‘큰손’이라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논쟁과 논란이 커질수록 양현석은 점점 더 성공을 거뒀다. 2014년의 그는 야심을 드러낸 후 진짜로 실현시켰고, 서바이벌을 통해 본인은 비난받되 소속 가수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YG의 신인들 중에서도 단시간 내 가장 치열한 경쟁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 바비는 데뷔 전부터 웬만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사람들은 서바이벌 쇼의 경쟁을 비난하면서도 그 서사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경쟁의 승자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다. 서바이벌 쇼가 그 자체로 히트 상품이 되며, 그 과정에서 탄생한 스타 또한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이 되는 시대. 양현석은 시대의 욕망이자 자신의 경영 방식을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어냈다. 2014년 내내, 그는 자신의 방식을 밀어붙임으로써 승리했다.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힐링캠프>에 출연한 양현석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젊음이다. 전 재산을 다 내놓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난 바꾼다. 그만큼 여러분들이 가진 젊음은 너무나 많은 기회와 도전 가능성이 있다. 모두들 하고 싶은 것에 미쳐라.” 하지만 그가 말하는 ‘도전’에는 극심한 경쟁은 물론, 거기서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는 그 방식으로 성공했고, 경쟁은 잔인하지만 승자에게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과정의 잔인함은 성과의 효율성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지금, 빅뱅의 서바이벌 <리얼 다큐 빅뱅>이 방송됐던 2005년보다 그의 영향력은 훨씬 더 커졌다. 그사이 사회 전반에서 경쟁은 9년 전보다 극심해졌고, 승자 독식 구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판타지를 동력 삼는 아이돌 산업에서조차 SM과 YG 같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 아이돌은 각종 활동에서 경쟁 중임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성공을 향한 갈망을 드러내고, 그 방식으로 극단적인 경쟁을 선택하는 양현석은 2014년 한국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2014년 이후 YG와 양현석이 어떻게 변해갈지, 얼마나 더 커질지 궁금한 이유다.
2014.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