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타임라인] 태양, 인생의 절반을 해 온 ‘동영배 음악’
[네이버 연예]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스타는 없다. 전세계가 무대인 K-POP 스타라면 더욱 그렇다. 별이 되기 위해 최소 3~4년은 갈고 닦으며 인내의 시간을 보낸다. 사춘기 시절 경험하는 트레이닝은 예외없이 가혹하다. 이 시기 수많은 연습생들이 혹독한 땀과 눈물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타의 반, 자의 반 꿈도 접는다.
빅뱅의 리드보컬 태양(26•동영배)에게도 이 시기는 가혹했다. 연습생으로 6년, 2190일, 52560시간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구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자기 자신과 싸웠다.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칠 시간도 부족했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스스로 선택한 길.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었다. 요령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6년을 꼭 채웠다. 그리고 진심을 다한 노력에 배신은 없었다. 2006년 빅뱅의 멤버로 데뷔했고, 지금의 태양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밝게 떠 있다.
이번주 ‘스타 타임라인’ 주인공 태양의 ‘타임슬립’ 장소는 태양이 꿈을 키운 합정동 구사옥이다. 2011년 YG 신사옥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이 곳은 연습생들에게 ‘꿈’을 키워가는 장소로 남아있다. 최근 정규 2집 ‘라이즈’를 발표한 태양 역시 구사옥에서의 ‘쓰고 달콤했던’ 경험이 성장 촉진제가 됐다.
15일 구사옥을 방문한 태양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여기도 많이 변했어요. 근데 공기가 습한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해요”라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어린시절 뛰어놀던 뒷골목이라도 찾은 듯, 태양은 금세 12년 전으로 돌아가 가슴 속에 간직했던 그 때 그 이야기들을 술술 꺼내놓았다.
#1. 13살 태양의 인생 바꾼 한 마디 “가수가 하고 싶어요”
-가수 꿈을 꾼건 언제부터였어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근데 내성적인 성격이라 드러내진 못했죠. 4학년 때 연기학원이 붐이었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이모집에서 지내게 됐는데, 사촌 동생들이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저도 따라가게 된거죠. 한 번은 YG에서 어린이 지누션을 뽑아서,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결국 지누션 형들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오게 된 거죠. 힙합 음악도 처음 들었을 때인데 ‘여기서 연습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양현석 사장님에게 직접 말했나요.
“그랬죠. 형들과의 활동이 끝나면 전 다시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근데 그러기가 싫었어요. 사장님에게 ‘난 가수가 되고 싶다. 여기서 연습을 시켜달라’고 물어봤어요. 사장님이 ‘그래. 해보자’고 하는거에요. 어린 나이에 의지를 보인걸 좋게 봐주신거 같아요.”
-6학년이 그런말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4학년 때 IMF가 터지면서 집이 갑자기 어려워졌어요. 전 어린 나이에 그런 상황을 이해해지 못했죠. 한편으로는 그런 삶이 싫었지만, 빨리 잘하는걸 찾아서, 부모님 힘들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사장님을 처음 본 느낌은 어땠나요.
“‘정말 크다’였어요. 6학년 때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크고 건장한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했겠어요.
“처음엔 걱정하셨죠. 근데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어떻게 되든 부모에게 손 벌릴 생각은 하지 마라. 학교 성적은 잘 받아야 한다’고 옵션을 거시더라고요.”
-지드래곤과의 첫 만남도 그 때 쯤이었죠.
“지용이는 당시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에서 활동하다가 YG에 캐스팅 됐어요. 연습생이 되고 둘이 싸우기도 했지만 의지할 사람도 서로가 전부였죠. 같이 연습할 상대도 둘 뿐이었고요. 둘 다 학교 생활을 평범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청소년 시기의 추억은 지용이와 만든게 전부였어요.”
-경쟁의식도 있었을 거에요.
“당시에도 지용이는 회사에서 키우는 연습생이자 아티스트였어요. 전 제 발로 찾아 들어온 연습생이었고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아닌 차별’을 지용이보다는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고, 경쟁의식도 당연히 있었고요.”
#2. 동영배의 10대, 권지용과 보낸 보석 같은 시간들
-연습생 생활은 어땠나요.
“사회 생활을 시작한 느낌이었어요. 집과 학교에서만 지내다가 사회에 내던져지다보니, 사람을 대하는 법을 몰라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죠.”
-분명히 힘들었을 거에요.
“그랬어요. 특히 집이 의정부라 이동 거리도 시간도 길었고요. 오후 4시에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홍대로 출발해요. 6시에 도착해서 연습을 하고 11시가 되면 막차를 타려고 정류장까지 뛰어가야 했어요. 의정부 역에 도착하면 새벽 1시였고 그 때부터 번화가를 지나 30분을 걸어야 집에 들어왔죠. 그 때부터 학교 숙제를 시작해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이 들게 되요. 하루 용돈이 2000원인데 차비를 빼면 딱 400원이 남았을 정도로 빡빡했죠.”
-회사에선 뭘 가르쳐 주던가요.
“지금 연습생들은 좋은 시스템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받지만, 그 땐 댄서•가수 형들 연습하는걸 어깨너머로 보는게 전부였어요. 그래도 그 땐 가수 이전에 사람이 되기 위한 것들을 배울수 있었죠. 가령 회사에 가면 청소부터 시작해요. 지금은 회사 실장님이 된 헌표 형이 그 땐 선도부같은 느낌이었어요. 청소를 하면 검사를 하는데 먼지라도 나오면 혼나고 다시 하고요.”
-형들은 잘 가르쳐 주던가요.
“말 한 번 걸기 어려웠죠. 형들은 이미 스타잖아요. 우리에게 그렇게 따듯하지 않았어요. 진짜 부러웠던건 원타임 형들이 3집 활동을 시작한다고 미국에서 의상을 구입해 연습실 바닥에 깔아놓는데, 그 넓은 연습실이 가득 찰 정도였어요. 지용이랑 ‘우리도 가수가 되면 저런걸 입을 수 있겠지’ 그런 얘기했던게 기억나요. YG 안에서는 테디 형을 제일 좋아했어요. ‘나도 테디 형같은 래퍼가 될꺼야’ 그랬죠.”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요.
“지금 생각하면 웃고 말 이야긴데, YG 패밀리 2집이 나왔을 때에요. 지용이는 타이틀곡인 ‘멋쟁이 신사’로 형들과 활동을 했고, 저도 운좋게 수록곡 녹음을 할 수 있었죠. 그 때 YG패밀리가 가요대상에서 상을 받게 돼 집에서 어머니와 TV로 방송을 보고 있었거든요. 션 형이 대표로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앨범에 참여한 가수들 이름을 다 호명하는거에요. 솔직히 전 기대도 안했지만 정말 호명하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넌 앨범에 참여했는데 왜 이름도 불리지 않니’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에게 괜히 미안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어요.”
-래퍼가 꿈이었는데 이젠 보컬이 됐네요.
“어느날 사장님이 ‘주변에 음악 잘하는 친구가 없냐’고 묻기에 탑 형을 소개시켜주게 됐죠. 근데 사장님이 형을 만나자마자 노래를 불러보라는 거에요. 형은 완전 래퍼였는데 말이죠. 당시에는 힙합보다 R&B가 강세다 보니, 사장님은 누가 오든 노래부터 시키긴 했어요. 탑 형이 당황하면서 부른 곡이 알켈리의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I Believe I Can Fly)였어요. 근데 노래를 부르다 긴장을 했는지 막혀버린 거에요. 굉장히 뻘쭘했는데 제가 그냥 형 노래를 받아서 불러버렸어요. 그게 계기였어요. 사장님이 제게 ‘너도 노래 좀 하는구나, 노래를 좀 더 연습해봐’라고 하더라고요. 최근에도 멤버들과 ‘내가 왜 보컬이 됐지’를 두고 얘기하다가, 이 이야기가 떠올라 엄청 웃었어요.”
-당시 연습실 밖에서 만든 추억은 없었나요.
“지용이가 일산으로 이사를 가서 라페스타에 많이 갔어요. 당시엔 중고등학생 사이에 한 온라인커뮤니티에서 쪽지를 보내는게 유행했거든요. 어떤 학교에 ‘얼짱’이 있다고 소문이나면 지용이가 쪽지를 보내서, 만나고 그랬어요. 같이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요. 근데 그렇게 만난 친구들의 대부분은 ‘사진빨’이었다는게 함정인거죠. 하하. 제가 하기 힘들었던 평범한 일들을 지용이가 있어서, 연습실 밖에서는 할 수 있었어요. 가끔은 지용이랑 일산에서 놀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3. 23세 태양, 위기를 만나고, 또 다른 기회를 얻다
-빅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지용이와 전 듀오로 데뷔할줄 알았어요. 근데 사장님은 보이그룹을 만들 계획이었던 거죠. 처음엔 현승이(현 비스트 멤버)가 들어와서 17살 때부터 셋이 합숙을 했어요. 현승이가 나가면서 탑 형과 대성이, 승리가 들어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나와 지용이는 보이그룹이 싫었던 것 같아요. 사실 탑 형까지는 잘 알았지만 대성이와 승리는 전혀 몰랐고, 그 친구들의 포지션도 불분명했거든요. ‘이 친구들과 어떻게 해 나가야되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근데 연습을 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통한다는 걸 알았죠.”
-빅뱅이 처음부터 잘되진 않았어요.
“그랬죠. 동방신기같은 ‘꽃미남’ 그룹이 대세였어요. 우린 키가 크지도 않고, 예쁘게 옷을 입는 것도 아니었고요. ‘이런 친구들이 나왔구나’라는 정도의 관심이었죠. 그래서 더 쉬지 않고 싱글을 발표했던거 같아요. 한 달에 한 번씩 싱글을 냈고, 준비하는 기간엔 신문사를 돌면서 인터뷰를 했고요. 앨범이 나오면 방송을 하니까, 잠 잘 시간이 없었죠.”
-그러다가 ‘거짓말’이 거짓말처럼 터졌어요.
“원래는 ‘거짓말’이 지용이 솔로곡이었어요. 근데 사장님이 ‘이 노래를 빅뱅이 같이 부르면 잘 될거 같다’고 했죠. 우리가 추구하던 음악이 힙합에서 일렉트로닉으로 바뀐거라 의외였어요, 근데 결과적으로 잘 됐죠.”
-거기서부터 빅뱅의 전성기가 열렸죠.
“한 번 터지고 나니까 ‘하루하루”마지막 인사”붉은 노을’까지 4연속으로 히트가 이어졌어요. 그 때부터는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도 타고 그랬죠. 근데 그저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하루도 쉬지 못할 만큼 바빴거든요. 축하파티 이런건 생각도 못했고요. 그 땐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생각만 했어요. 게다가 한국에서 성공하니 바로 일본으로 보내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라’고 하는 거에요.”
-빅뱅에게도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바쁘게 몇년 동안 일만 했어요. 일에 치이면서 멤버들 간에 보이지 않는 균열도 생겼고요. 너무 힘드니까 예민해지는데 매일 얼굴을 봐야 했고요. 개인 활동을 하면서는 ‘그룹이 없어도, 혼자서 잘 할 수 있어’라는 생각도 들었을 거고요. 그래서 불안했어요. ‘우리도 이렇게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아이돌 그룹은 5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공감했어요. 그 때 거짓말처럼 좋지 않은 일들이 터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멤버들이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게 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간이 이어졌어요. 적어도 전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겪으니까요. 절벽에 서 있다보니 ‘이대로 끝내기 싫은데, 멤버들과 헤어지기 싫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의 개인적인 욕심들은 이제 없나요.
“그 때의 일들이 저 뿐만 아니라 멤버들에게도 크게 다가왔어요. 솔로 활동이 팀을 위한 것이라고 다들 얘기 하잖아요. 근데 사람이라 자신을 더 생각하게 돼 있어요. 우린 달라요. 그 일을 겪으면서 ‘팀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못한다’라는 걸 알게 됐어요.”
-탈선한 적은 없었나요.
“대단한 탈선을 계획한 적은 있어요. 미성년자인 승리만 제외하고 넷이서 맥주 광고를 찍었는데 촬영이 끝나면 대성이 차를 타고, 멀리 떠나서 일주일 동안 숨어있다 오자고 생각한 거에요. 카드를 쓰면 발각될 거 같아서, 현금을 왕창 뽑아서 다닐 계획까지 했어요. 광고를 찍고 숙소에 내려주면 도망가려고 했는데 매니저가 숙소가 아닌, 사무실에 내려주는 거에요. 사장님이 할 얘기가 있다는 거죠. 불안했는데 역시 우리 계획을 다 알고 있었어요. 승리가 사장님한테 ‘형들이 도망가려고 한다’고 이른거에요. 그 때 사장님이 따듯하게 ‘뭐가 힘드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탈선이 아니라, 얘기를 해야겠다고 느꼈죠.”
#4. 21살 태양의 아픈 첫 사랑
-첫 사랑은 어땠나요.
“첫 사랑에 대한 상처가 굉장히 커요. 데뷔 하기 전에 좋아해서, 데뷔한 후에도 만난 친구가 있었어요. 너무 바빠서 고백은 하지 못하고 서로 좋아만 하는 관계로 몇년을 보낸거에요. 전 데뷔라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고, 만날 수도 없었어요. 그래도 두 달에 한 번 꼴로 얼굴은 볼 수 있었고요. 그 사랑이 제게 가져다준 힘은 무궁무진했어요. 그 사람 덕분에 ‘정말 최고가 되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제겐 일 보다도 그 사람의 존재가 더 컸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어도 기다릴수 있었던 거고요. 근데 그 친구는 많이 힘들었나봐요.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걸 알았어요. 모든게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처음 느낀 허무함이 밀려왔고 음악도 그냥 일처럼 느껴졌어요. 이 정도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다면, 과연 어떤게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은 연애를 하고 있나요.
“많지는 않지만 연애는 했어요. 근데 지금도 워낙 바빠서 만날 시간도 기회도 별로 없고요.”
-‘감동을 주는 가수’다 되고 싶다고 했어요. 이젠 가수가 됐는데 다른 꿈이 생겼나요.
“지금도 비슷해요. 아직도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 때 생각했던 꿈에 완전히 다가섰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가 그린 꿈은 마이클 잭슨의 느낌이었어요. 수만명이 모인 스타디움 앞에서 노래를 하고, 대중에게 음악적인 영감을 주는 가수요. 아직 전 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어요.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았어요.”
-월드 투어를 다니면서 멤버들과 재미있는 추억도 만들었을 거에요.
“영국 런던에서 공연을 하고는 멤버들과 클럽에 갔어요. 그 안에 우리만 아시안이었어요. 아시안이 멋있는 옷을 입고 노는걸 보고 놀란거 같더라거요. 영국인들이 와서 ‘이거 어디 옷이냐’고 브랜드를 묻고, SNS 친구 신청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 당시 ‘강남스타일’이 굉장히 흥행해서 우리에게 ‘두 유 노 싸이’를 묻더라고요. 제가 또 그런건 친절하게 설명하는 편이라 ‘같이 음악하는 우리 형’이라고 자세하게 알려줬죠.”
-태양에게 YG란.
“청춘인거 같아요. 제가 이제 26살인데 YG에서 제 인생의 반 이상을 보냈거든요. 앞으로 그 이상을 보내게 될거고요. 지금은 회사가 굉장히 커졌어요. 아티스트들의 색깔도 다양해 졌고요. 이 곳 구사옥도 마찬가지네요.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 ‘다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특유의 습한 냄새는 똑같이 남아있네요. 예전에는 이 지하에서 모든게 다 이뤄졌어요. 녹음부터 연습, 매니지먼트까지요. 그 당시가 ‘가장 YG패밀리 다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패밀리라고 하기에 회사가 너무 커졌어요. YG타운이 된 거 같아요.”
정리 : 일간스포츠 엄동진 기자
2014.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