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아닌 아티스트 공연 케이팝 미래 봤다”
[한겨레] ‘지드래곤 공연’ 본 이동연 교수 기고
지드래곤이 지난 30~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월드투어 ‘원 오브 어 카인드’의 첫 공연을 펼쳤다. 오랫동안 한국 아이돌 음악을 연구해온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번 공연을 보고 느낀 점과 케이팝의 방향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스토리텔링·무대·소품·영상 등
외국 스타 콘서트와 견줄만
자작곡 통해 창작력도 보여줘
YG 콘텐츠 위주 공연 미래 밝아
SM의 아이돌 연합 무대는 한계
지드래곤의 월드 투어 ‘원 오브 어 카인드’ 개막 공연은 이틀간 2만6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 만에 펼치는 단독 공연 투어의 첫 단추를 잘 끼운 그는 어느덧 만인의 아이돌이 아닌 고독한 아티스트로 변신해 관객 앞에 섰다.
이번 월드투어는 그의 음악 여정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월드투어를 홀로 감당하기 위해 그가 가져야 할 공연에 대한 태도, 마땅히 감내해야 할 정신적·육체적 압박, 그리고 보완해야 할 음악적 완성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드래곤은 이번 공연에서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줘야 하는 ‘즐거운 고문’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공연은 외국 유명 스타의 공연에 견줘도 결코 손색없는 내용과 규모를 갖췄다. 지드래곤의 음악적 변신과 성장을 가늠하도록 세 꼭지로 나눈 스토리텔링, 팝아트적인 무대 장치와 과거 ‘솔 트레인’(미국 흑인음악 전문 프로그램)을 연상케 하는 수직 무대 분할, 선곡에 맞춘 개성 넘치는 의상과 세심한 소품들, 모자이크 스크린 투사 방식의 입체적 영상은 듣는 공연을 넘어 보는 공연의 맛을 더해주었다.
빅뱅 월드투어 때부터 손발을 맞춰온 마이클 잭슨 공연 스태프 출신 외국 연출·안무가 트래비스 페인과 스테이시 워커의 댄스 퍼포먼스, 실력 있는 외국 세션들의 라이브 연주는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몬스터볼’ 공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솔로 가수를 위한 초대형 공연 방식의 한국적 전형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오프닝 곡 ‘미치고’에서 ‘하트브레이커’, ‘결국’을 거쳐 ‘크레용’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만든 히트곡으로 2시간 이상의 공연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 그룹들이 떼지어 나오는 종합선물세트 공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을 빛나게 했다.
창작 능력과 공연 콘텐츠. 이 두 단어가 이번 지드래곤 공연이 케이팝의 현재와 미래에 던지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번 공연에 투자된 시간과 인력, 재원의 규모를 모든 케이팝 가수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케이팝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있어 유일한 대안은 경쟁력 있는 공연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방송과 행사 출연, 그리고 유튜브를 통한 외국 홍보 방식은 케이팝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
2009년 시작해 2년간 이어진 레이디 가가의 ‘몬스터볼 투어’는 세계 201회 공연에 1500억원의 수입을 올렸고, 지난해 빅뱅의 월드투어는 12개 나라에서 80만명을 동원하며 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경쟁력 있는 공연 콘텐츠는 비록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특히 아티스트의 생명력을 연장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회사 브랜드를 중시하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에스엠타운’ 연합공연 방식보다는 아티스트 중심의 공연 콘텐츠를 중시하는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제작 방식이 케이팝의 외국 시장 진출을 위한 내실 있는 대안으로 보인다.
이번 공연에서 못내 아쉬웠던 음향 문제는 대형 공연 콘텐츠의 내실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대형 체육관에서 공연하다 보니 연주·보컬·코러스·음향효과 사이의 안정된 균형감이 부족해 보였다. 케이팝의 공연 콘텐츠가 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내에도 전문적인 대형 공연장 설립이 시급하다. 지드래곤 월드투어 첫 공연은 본인과 케이팝의 미래를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만든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