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포인트] 막내 승리의 성장기

2013-08-25 07:31 오후

빅뱅이 데뷔 8년차에 접어드는 동안 팀의 이름은 커졌고, 멤버들의 활동은 넓어졌다. 그 중에서도 막내인 승리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동시에 두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바쁘게 지난 8년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십대 소년이 스타가 된 과정은 성장으로 요약될 수 있지만, 사실 승리의 지난 시간은 균일한 그래프로 표현할 수 없는 다사다난의 날들이었다. 막내의 역할에서 부터 사업가로서의 잠재력까지, 승리가 보여준 다양한 얼굴에 각각 다른 나이를 측정해 보는 것은 그래서다. 열일곱, 혹은 스물 넷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진난만하고 혹은 너무 능수능란한 아이돌, 그 덕분에 지난 8년간 자신의 입지를 지킬 수 있었던 승리에 대한 이야기다.

글. 윤희성 (대중문화평론가)/ 기획 강명석 (웹 매거진 < ize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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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 막내 작은승현

빅뱅의 데뷔 준비를 담은 프로그램 <리얼다큐 빅뱅>에는 승리의 팀 탈락 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발전한 노래 실력과 확고한 열정을 인정받고 팀 합류의 기회를 얻은 승리의 당시 나이는 17세. 또래보다 대담하고 침착해 보였지만 양현석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후 얼굴을 감싸며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은 “죽을 것 같아요” 였다. 당시의 긴장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빅뱅의 첫 콘서트에서는 소감을 말하다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당사자에게는 간절한 순간들이었겠지만, 유난히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승리의 성격은 묵직한 빅뱅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귀여움을 확보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멤버들에게 종종 장난의 대상이 되는 것 역시 카리스마를 지키기보다는 팀의 막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승리의 태도 덕분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다소 과장된 귀여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승리는 ‘dirty cash’의 뮤직비디오에서 노란색 유치원복을 소화할 때부터 빅뱅이 월드 투어를 할만큼 성장한 지금까지도 팬들을 위해 귀여운 표정을 연출하면서 막내의 입지를 각인 시키고 있다. 빅뱅의 콘서트에서는 종종 팬들이 무대 위의 승리를 향해 팬더 인형들을 던져 주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단지 승리와 닮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형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심지어 팬더 탈을 쓰고 무대에 등장할 정도로 아이처럼 즐거워 하는 승리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이다.

2

39세 : 예능 다크호스

노래나 춤과 달리 훈련으로 향상되기 어려운 것이 예능감이다.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목한 아이돌의 대부분이 넘치는 에너지, 혹은 타고난 엉뚱함이라는 비슷한 특징을 가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승리는 아이돌로서는 드물게 적당히 능글맞은 노련한 캐릭터로 예능 프로그램에 적응 했다. 멤버들과 함께 출연할 때는 물론, 혼자 섭외가 되었을 때도 승리는 섣불리 나서서 개인기를 선보이거나 준비해 온 상황을 무리하게 연출하지 않는다. 대신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필요하다면 곤란한 입장에 처하는 것마저도 감수한다. 주인공을 자처하기 보다는 필요한 캐릭터의 역할을 맡으려는 그의 태도는 학습된 겸손이라기 보다는 또래에 비해 넓은 범위를 계획하는 타고난 기질 때문일 것이다. , <강심장> 등의 프로그램에서 산다라박은 승리로부터 예능 강습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이때 승리가 강조한 것 역시 요컨대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안에서 역할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본에서 승리가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활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진행자로서의 능력까지 증명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3

19세 : 스트롱 베이비

빅뱅의 2집 타이틀 곡은 이문세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붉은 노을’. 빅뱅에게 이 앨범은 ‘거짓말’이 수록된 미니앨범 의 대성공 이후 국민아이돌이 된 그들이 가장 대중적인 디스코그래피를 만들었던 순간이지만, 승리는 솔로곡 ‘Strong Baby’를 통해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 받고자 했다. 막 스무살이 된 그는 파티의 호스트처럼 차려 입고 빅뱅과는 다른 분위기의 화려함을 연출하고자 했으며,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연상 시키는 특유의 분위기는 그의 첫번째 미니앨범까지 이어졌다. 너무 성장해버린 빅뱅의 멤버로서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일은 분명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정교하고 섬세한 안무를 추구하는 승리의 포부와 특유의 미성을 전반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솔로 무대는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자신의 의문을 정면으로 돌파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커리어의 방향을 다듬어나갔다는 점에서 승리의 솔로 활동은 단순한 무대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너무 뒤쳐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빨리 지쳐버리지도 않고, 시도를 멈추지 않으며 성장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돌로서는 제법 훌륭한 미덕이기도 하다.

4

49세 : 중견 아이돌

어린 나이에 사회 생활을 시작해 서른이 되기도 전에 커리어의 위기를 겪는 것이 많은 아이돌의 삶이라면, 승리는 비교적 꼼꼼하게 장기적인 삶의 계획을 세운 케이스다. 일본에서 예능과 연기로 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한편 아카데미 사업을 통해 후진 양성이라는 궁극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마저 다지고 있으니 심지어 모범적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그러나 무엇보다 승리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닌 인맥이다. <강심장>에 출연한 멤버들이 승리가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팀의 광고 계약을 성사 시켰다고 증언 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그의 친화력은 앨범 작업과 공연을 통해 만난 스태프들의 인터뷰로도 알려진 바 있다. 심지어 같은 소속사의 신인인 이하이와 강승윤은 먼저 말을 걸어주고 친밀감을 표해준 승리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유명인이 주변의 기분을 살핀다는 것은 나이를 떠나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대중의 관심보다는 비전을 가진 사업, 그 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쳤으니 적어도 사업가로서 승리의 재능 만큼은 탁월한 것 같다.

5

29세 : 엔터테이너

두번째 미니 앨범을 발표하기 전, 승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포기하려 했던 음악을 다시 마주하게 된 과정 만큼이나 진솔했던 것은 더 이상 그가 빅뱅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룹 안에서 배운 것을 편안하게 인정하고, 그것이 앨범에 녹아 있음을 털어 놓는 그의 목표는 분명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무대 위에서 승리는 춤으로 공간을 채우거나 기교로 노래를 꾸미려 하지 않는다. 가사와 편곡에 여백을 둔 ‘할 말이 있어요’는 깨끗한 그의 목소리 자체를 드러내고, 실제 연애담을 바탕으로 했다는 ‘GG BE’는 인위적인 이미지가 아닌 본연의 유쾌함을 동력으로 삼는다. 멤버들과 다른 취향을 갖기 위해 스타일을 고민하고, 과감하게 파격적인 수위의 티저 영상으로 관심을 끌기도 한다. 팀의 막내라고만 생각 했던 승리가 문득 남자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 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에 덤벼드는 열혈의 시절과 할 수 없는 것에 좌절하는 열등감의 시간을 지나, 자신에게 잘 맞는 무대에 조금 더 가까워진 덕분에 만들어진 여유야말로 지금 승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그리고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그 다음은 본격적인 쇼의 막이 오를 순서일 것이다.

2013.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