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지난 4년은 내 안의 나를 찾기 위한 여정”
[아이즈 = 강명석 기자] 태양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가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있다. 그리고, 이제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의 새 앨범 < RISE >의 타이틀 곡 ‘눈, 코, 입’은 결국 그런 노래다. 뮤직비디오조차 태양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것에서 시작해 점점 뒤로 물러나며 그의 뒤에 있는 세상까지 보여주는 이 곡은, 구체적인 감정보다 그 감정을 느끼기까지의 여정을 집요해 보일 만큼 세밀하고 느릿하게 펼쳐놓는다. 멜로디는 어느 곳 하나 시원하게 지르지 않고 천천히 감정을 끌어 올리고, 하나로 뭉쳐 있던 비트는 멜로디를 따라 점점 더 세밀하게 나눠지며 앞으로 나온다. 때로는 갑갑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여정은 그대로 노래하는 남자가 겪었던 괴로움의 시간이고, 노래가 끝나면 결국 이 남자가 마음의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그 순간에 이른다. 그렇게 기교도, 퍼포먼스도 없이 한 노래를 끌고 가면서 태양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감정을, 스타 태양이 아닌 실연의 이야기를 하는 한 남자가 되었다. 그것은 한 앨범을 4년 동안 만들어가면서 이 스타가 자신을 찾아온 여정이기도 했다. 앨범을 시작하며 여행을 시작했고, 새 앨범과 함께 지금 이 곳으로 돌아온 태양과 만났다. 세상을 네 번 돌 시간동안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4년 만에 앨범을 낸 기분이 어떤가.
태양: 솔직히 잘 되고 있는데, 내 일 같지 않다. 누군가에게 축하 받으면 왠지 내가 태양이란 가수에게 축하를 해줘야 할 거 같고 (웃음) 앨범 내기 전에 어떤 시점이 지나고 나서는 어떻게든 지금까지 된 걸 빨리 내고 바로 다음 걸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2012년에도 앨범 준비가 어느 정도 됐다고 했었다. 그 뒤로 2년이 더 걸렸다.
태양: 그때쯤 나는 원하는 걸 더 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다. 그 때 미국에서도 미디엄 템포의 R&B가 정점을 찍고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고, 프랭크 오션이나 위크엔드 같은 뮤지션들이 하는 새로운 R&B 음악들을 듣게 됐다. 지금은 주류지만 그 때는 이런 음악을 하는 많은 뮤지션들이 언더그라운드여서 믹스 테잎(뮤지션이 비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곡, 또는 이를 담은 앨범)들을 찾아 들었는데, 이걸 한국에서 제일 먼저 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PB R&B(일렉트로니카, 록, 힙합, R&B가 섞인 장르)를 하고 싶었던 건데, 이번 앨범의 ‘LOVE YOU TO DEATH’ 같은 곡에 그런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다. 왜 안했나.
태양: 회사와 생각하는 방향이 정 반대에 가까웠다. 나는 이런 음악이 곧 새로운 흐름이 될 거 같은데, 회사에서는 대중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깊고 생소한 음악일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회사와 내가 서로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잘 이해 못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빅뱅으로서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데, 내가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남이 안 했던 걸 내가 하고, 대중적인 성공을 하든 안 하든 그런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제는 그 입장이 이해가 됐나.
태양: 지금 앨범이 그 때 내가 생각한 완벽한 청사진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때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설득할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로 끌어내지 못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
태양: 처음 내가 싶은 걸 하려고 하고, 원하는 것을 찾을 때는 너무 좋았었다. 그게 지난 앨범을 내고 첫 2년 동안이었는데, 그 때는 그런 것들을 찾는 거 자체가 너무 좋았었다. 그러면서 나온 곡들이 너무 마음에 들고. 그런데 그게 사실 냉정하지 못했던 거다. 꿈이 너무 커지면서 현실에서 내 노래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줬을 때 그게 좋은 곡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방황이라면 방황을 하게 되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고,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만큼 본인 마음속으로 계속 파고들었던 건가.
태양: 맞다. 여행을 자주 했는데, 그게 음악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내 안의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결국 사람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나. 데뷔 후에 자의로도, 타의로도 음악을 했고 참 쉼 없이 일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까 나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상황, 좋아하는 취미가 뭔지 많이 잊어버리게 됐다. 그런 것들을 더 확실히 찾는 시간이었다.
찾아낸 것 같나?
태양: 찾은 것 같다. 그래서 좋다. 전에는 어떤 상황에서 내가 왜 그게 불쾌하고 싫은지 몰랐다. 결국 그건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싫었던 건데, 그 때는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건지에 대한 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보다 잘 알게 된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때 큰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도 알겠고.
그 모든 결과물이 결국 ‘눈, 코, 입’으로 나온 거 같다. 사실 이 곡의 리듬은 PB R&B에 가깝기도 하고, 멜로디도 복잡하다. 그런데 결국 대중적으로 성공했고.
태양: 맞다. 이 곡은 그냥 발라드로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비트는 발라드에 들어갈 수 없는 비트를 썼다. 지금 내가 부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접점이다.
회사에서도 접점이라는 걸 인정한 것 같다. 장점인 퍼포먼스를 거의 하지 않는 곡인데도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
태양: ‘눈, 코, 입’을 하기 전까지는 어떤 노래들을 할 때 굉장히 노력해서 만들었다. 그 때 끌리는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 음악이 주는 감동이나 진정성 보다 사운드에서 오는 느낌이 중요했고, 거기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앨범을 내지 않게 되면서 계속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됐고, 그 때 결국 음악이 내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 감동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때 나온 게 ‘눈, 코, 입’이었다. 그래서 내 감정이 드러나는 곡이 나왔는데, 외려 사장님은 그게 대중이 신선하게 받아들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보컬을 이렇게 섬세하게 들려준 적이 없으니까 그런 느낌으로 가보자고.
그래서 ‘눈, 코, 입’을 그렇게 정교하게 부른 건가. 거의 말하는 것에 가까울 만큼 음절 하나하나의 뉘앙스를 살렸다. 곡 시작부터 끝까지 천천히 독백을 하면서 감정을 털어낸 것 같았다.
태양: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모든 게 압축이 됐던 것 같다. 전에는 뭐랄까, 들리는 대로만 표현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음악을 들을 때도 보컬 테크닉 보다 그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부르고, 어떤 심정으로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래서 한 단어를 뱉더라도 디테일이 달라진다. 인트로인 ‘RISE’와 ‘버리고’, ‘LOVE YOU TO DEATH’처럼 오래 전 불렀던 곡과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지금 내 감성으로 그 곡들을 다시 불러야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때보다 조금 더 깊이는 있겠지만 그 때의 에너지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때 곡들은 그 때의 기억으로 남겨두자고 생각했다.
‘눈, 코, 입’은 멜로디가 시작부터 후렴구까지 조금씩 계속 변해가면서 시작과 끝이 전혀 달라진다.
태양: ‘눈, 코, 입’은 내가 4년 동안 얻은 게 다 몸에 익숙해져서 나온 거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내 상황이 그렇게 곡을 만들게 된 것도 있고. 굉장히 감정을 폭발시켜서 부를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슬퍼질 때 펑펑 울 수도 있지만 딱 눈물을 머금은 상태에서 참지 않을까. 어떤 감정을 대놓고 폭발시키는 것 보다 그 마음을 애써 억제하려고 하면서 끝까지 간다. 결국 폭발시키지 않기 때문에 여운이 남기도 하고, 그게 내가 느낀 감정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긴 여운이 남는 것처럼, 노래를 듣고 나서 그런 안타까움이 전달되길 바랐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감정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게 당신 같다는 생각도 들다. 심지어 ‘STAY WITH ME’나 ‘링가링가’처럼 신나는 곡들도 굉장히 복잡한 구성을 가졌다.
태양: 그렇게 생각을 하고 간 건 아니고,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간 거 같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곡의 감성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래서 그 감정을 이해한 상태에서 “이게 아닌데” 하고 노래에서 목소리가 겹치는 부분만 빼고 모두 한 번에 불렀다. 전에는 더 좋은 감정을 잡아내려고 한 부분을 여러 번 불러서 녹음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감정이 잡히면 그걸 그대로 불러서 그 중 가장 잘 부른 걸 골랐다.
가끔은 더 대중에게 단번에 어필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나. 이젠 지르는 보컬도 거의 없고, 있더라도 곡에서 너무 부각되지 않게 살짝 숨겨 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들던데.
태양: 그런 스타일의 곡 중에 좋은 게 있다면 하겠는데, 지금은 별로다. 격정적인 곡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섬세한 감정들을 건드리는 게 좋다. 소리가 시원하게 나오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 음악을 듣다 보면 섬세한 감정 하나 하나를 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링가링가’, ‘STAY WITH ME’ 같은 곡은 과도기 같기도 하다. 구성도 복잡하고, 작년에 활동했던 ‘링가 링가’는 ‘눈, 코, 입’과는 정 반대로 트렌디한 음악에 화려한 퍼포먼스를 했었다.
태양: 그 노래에도 분명히 내가 있다. 앨범 나오기 전 첫 번째 싱글인데, 여기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었다. 퍼포먼스도 그렇고. ‘눈, 코, 입’이 싱글로 먼저 나왔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퍼포먼스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처럼 너무 짜여진 것보다는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쪽이 더 좋아진 것 같고.
결국 < RISE >는 ‘RISE’로 시작해서 ‘눈, 코, 입’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앨범이 됐다.
태양: 어찌됐든 간에 그건 확실하게 담겨있다. (웃음) 4년 동안 내가 어떻게 헤쳐 왔고, 뭘 해왔으며, 뭘 얻어왔는지에 대한 긴 여행. 그래서 시기적으로 다 다른 곡들이 수록됐다. 인트로를 4년 전에 만들고 그 후 4년 동안 내가 그 당시에 느꼈던 것들, 받아들여야 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시기에 콘셉트를 갖고 간 앨범과는 거리가 멀다. 4년 동안 수많은 곡을 작업을 하면서 그 때마다 영감들이 다 다르니까.
곡을 더 넣고 싶진 않았나. 4년 동안 수많은 곡들을 작업했을 텐데.
태양: 마지막까지도 그걸로 고민이 많았다. 준비를 마치고 발매일을 앞두고 트랙들을 고르는데 원래는 13곡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마지막에 냉정하게 아홉 곡만 골랐다. 정말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너무 보여주려고 애 쓴 느낌이 나는 것들은 다 뺐다.
하지만 ‘눈, 코, 입’까지 오면서 한 시기를 거친 상황에서 좀 더 많은 노래를 부르고 싶지는 않나. 좀 부족한 곡이라도 막 내보는. (웃음)
태양: 그게 지금이라는 걸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발표하지 않은 곡들을 믹스테잎으로 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대중의 반응을 받고 싶다. 발표하지 않은 곡은 그게 정말 명곡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라고 해도 그럴 기회가 없는 거니까. 대중이 듣기에 별로라면 별로라는 말을 들어도 되고. 이런 부분은 회사와 이야기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 그리고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는 시도도 해보려고 하고. 방송은 보여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 많지 않더라도 최대한 공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회사와 같은 생각이다. 대신 이래저래 공연은 많이 하고 싶다. 게릴라 공연은 반응이 좋으면 계속 하고 싶고, 일본 공연 뒤에 국내 공연을 할 생각이고.
앞으로는 솔로로도 좀 자주 봤으면 좋겠다. 여행은 끝났으니까. (웃음)
태양: 어쩌다 보니까 앞으로 천천히 가겠다는 게 내 방향이 된 것 같다. 앨범 만드는데 4년이 걸렸으니까 다음 앨범은 6년이 걸려도 만들겠다는. 하하하! 물론 농담이다. 다른 건 알 수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바라는 것의 접점을 만나는 곡들을 찾아 나가겠다. 내가 부르는 노래들이 사람들에게 기대를 줄 수 있도록.
2014. 6. 19.